단카이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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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단카이 세대는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를 일컫는 용어로, 소설 《단카이 세대》에서 유래되었다. 이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출생하여, 전쟁의 경험이 없고,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며 일본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단카이 세대는 인구학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사회,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2007년, 2012년, 2015년, 2025년 문제 등 단카이 세대의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문제들이 제기되었으며, 일부에서는 이 세대에 대한 특혜가 젊은 세대와 여성에게 불이익을 초래한다는 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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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카이 세대 | |
---|---|
단카이 세대 | |
일본어 | 団塊の世代 |
로마자 표기 | dankai no sedai |
개요 | |
정의 | 일본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
특징 | 높은 출생률 급격한 사회 변화 경험 높은 교육 수준 경제 성장 주도 |
역사적 배경 | |
시기 | 1947년 ~ 1949년 (쇼와 22년 ~ 24년) |
원인 |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일시적인 출생률 급증 |
인구 규모 | 약 680만 명 |
사회적 영향 | |
경제 | 고도 경제 성장 시기 주역 경제 발전 기여 소비 문화 주도 |
정치 | 전공투 세대 사회 운동 참여 기성세대 비판 |
문화 | 대중문화 발전 만화 및 애니메이션 대중화 새로운 문화 형성 |
문제점 및 비판 | |
인구 불균형 | 고령화 사회 문제 심화 |
사회 보장 부담 | 연금 및 의료비 증가 |
세대 갈등 |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 갈등 |
관련 용어 | |
단카이 주니어 | 단카이 세대의 자녀 세대 |
신인류 | 단카이 세대 이후의 세대 |
잃어버린 20년 |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 |
기타 | |
소설 | 단카이의 세대 (사카이야 다이치 저) |
참고 자료 | |
출처 | goo 사전 후생노동백서 (2008년) 후생노동성 인구동태통계 (2009년) |
2. 정의 및 어원
'단카이 세대'라는 용어는 경제 평론가이자 작가인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가 1976년에 발표한 소설 《단카이의 세대(団塊の世代)》에서 유래했다.[12] 사카이야는 소설에서 이 세대를 전기 단카이(1943년~1946년), 단카이(1947년~1949년), 후기 단카이(1950년~1953년)로 구분했다.
2000년 일본 국세조사에 따르면, 단카이 세대는 약 680만 명으로, 직전 세대보다 20%, 직후 세대보다 26% 많다.[9] 단카이 세대가 태어나기 전에는 전쟁 중과 전후 직후였기에 출산을 미루는 경향이 있었다.[9] 제2차 세계 대전 종전과 함께 다이쇼 세대의 젊은 남성들이 복귀하고, 1940년대 후반에 결혼하는 남성이 증가하면서 제1차 베이비붐이 발생했다.[10]
단카이 세대는 수험 전쟁, 경쟁, 학생운동, 청바지, 뉴뮤직, 뉴패밀리 등의 키워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들은 콜라, 햄버거와 같은 미국 문화의 상징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대중 소비 세대의 주역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보냈다. 이전 일본 남성들에게서는 보기 힘들었던 패션에 대한 관심, 그룹사운드, 포크 송, 장발 등이 단카이 세대의 상징이었다.
단카이 세대가 태어나기 전에는 전쟁 중이거나 전쟁 직후였기 때문에 출산을 미루는 경향이 있었다.[9]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다이쇼 세대의 젊은 남성들이 복귀하면서 1940년대 후반에 결혼하는 남성이 증가했다.[10] 1910년대・1920년대 출생의 젊은 남녀의 결혼이 급증하면서 출생 인구가 대폭 증가하여 제1차 베이비붐이 발생했다.[10]
1948년까지는 낙태죄로 인해 낙태가 금지되었으나, 1948년 우생보호법에 의해 제한적으로 허용되었고, 1949년에는 “경제적 이유”로 인한 낙태도 허용되면서 출산율 증가에 제동이 걸렸다.[11] 1950년 이후 출산율이 급속도로 하락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에서는 1947년부터 1949년의 3년 동안 태어난 인구가 급증하게 되었다.[12] 미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쪽은 “베이비붐 세대”라고 불린다.
연합국군 점령하의 일본에서 태어나, 친아버지가 전사하여 모자 가정이 된 경우나, 본토 공습 등의 전재 경험이 없는 세대이다. 또한, 쇼와 40년대에 히트곡이 된 「전쟁을 모르는 아이들」에 상징되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이며 “최초의 제2차 세계 대전 후 출생 세대”이다.
3. 역사적 배경
단카이 세대가 태어나기 전에는 전쟁 중이거나 전후 직후였기 때문에 출산을 미루는 경향이 있었다.[9]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다이쇼 세대의 젊은 남성들이 귀환하고, 1940년대 후반에 결혼하는 남성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반전되었다. 1910년대・1920년대 출생의 젊은 남녀의 결혼이 급증함에 따라 출생 인구가 대폭 증가하여[10] 제1차 베이비붐이 발생했다.
1948년까지는 강간・간통과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산부인과에서 피임・낙태・불임 수술 등을 하는 행위는 형법상 낙태죄로 금지되었다. 1948년 우생보호법에 의해 제한적으로 허용되었고, 1949년에는 동법이 개정되어 세계 최초로 “경제적 이유”로 인한 낙태도 허용되었다. 이로 인해 출산율 증가에 제동이 걸렸고, 1950년 이후 출산율이 급속도로 하락했다. 또한 전후 결핵 등 전염병의 예방법·치료법이 확립되어 청소년기 사망 위험이 감소하면서 다산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도 1950년대 이후 출산율 하락의 한 요인이었다. 단카이 세대의 어머니 세대까지는 조산사에 의한 출산이 주류였지만, 쇼와 30년대에는 산부인과 의료에 의한 출산이 주류가 되었다.[11]
이러한 이유로 일본에서는 1947년부터 1949년까지 3년 동안 태어난 인구가 급증하였다.[12]
4. 인구학적 특징
1948년까지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산부인과에서의 피임, 낙태, 불임 수술 등이 형법으로 금지되었으나, 1948년 우생보호법에 의해 제한적으로 허용되었고, 1949년에는 “경제적 이유”로 인한 낙태도 허용되면서 출산율 증가에 제동이 걸렸다.[11] 1950년 이후 출산율이 급속도로 하락했다. 전후 결핵 등 전염병 예방법·치료법 확립으로 청소년기 사망 위험이 감소하고 다산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도 1950년대 이후 출산율 하락의 한 요인이었다.[11]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1947년부터 1949년의 3년 동안 태어난 인구가 급증하게 되었다.[12] 2014년 10월 시점에서 코호트별 인구가 200만 명을 초과하는 것은 단카이 세대의 65~67세와 그 직후인 64세, 제2차 베이비붐 세대인 41세뿐이다.[13]
5. 단카이 세대의 성장 과정
5. 1. 유년기 및 학령기
단카이 세대는 인구가 급격하게 많아진 세대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어야 했다. 한 학급의 학생 수가 50~60명에 달했고, 교실이 부족한 상황도 발생했다.[18]
대학 진학률은 15%~20% 정도로 낮았으며,[18] 대부분의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였기 때문에, 부유한 가정을 제외하고는 지역의 국립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했고, 이로 인해 국립대학의 경쟁률이 높았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여성의 경우, 학력이 높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도 "여자에게는 학문이 필요 없다"는 인식이 남아있었다.
5. 2. 청년기
단카이 세대는 콜라, 햄버거와 같은 미국 문화의 상징들을 적극 수용하였고 대중 소비 세대의 주역이었으며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보냈다. 그 때까지 일본 남성들에게 찾아 볼 수 없었던 패션에 대한 관심과 그룹사운드(GS), 포크 송, 장발이 단카이 세대의 상징이었다.
대학 진학률은 15%~20% 정도로 낮았고,[18] 대부분의 고등학교 졸업생은 취업했다. 중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하는 사람도 많았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시대였기에, 부유한 가정을 제외하고는 지역의 국립대학 진학을 원하는 경향이 강했고, 국립대학의 경쟁률이 높았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직장인 학생도 많았다. 여성의 경우, 학력이 높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도 "여자에게 학문은 필요 없다"는 생각이 남아 있었다.
지방 농촌이나 폐광 지역의 중학교·고등학교 졸업생들은 고도 경제 성장기에 일자리가 풍부했던 도쿄나 오사카 등의 대도시로 집단 취업했다. 그들은 “'''황금알'''”이라 불리며, 중소영세기업에서 다수 고용되어 일본 경제의 기반을 지탱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한 지식인 청년들은 기존 사회 체제에 대한 반발에서 소위 학생 운동이라 불린 대학 개혁, 안보 투쟁, 베트남 전쟁 반대의 반체제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도시 대학에서 지방 대학으로도 확산되어 전공투 운동 등에서 일본 정부와 기성 질서에 반발하는 신좌익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1969년 도쿄대학 분쟁이 패배로 끝나고, 70년 안보 투쟁도 부진에 그치자 많은 청년들이 학생 운동에서 (표면적으로는) 떠나갔고, 몰린 극렬파의 폭력 행위가 심해졌다. 아사마 산장 사건과 당파 분열에 따른 내분과 린치의 만연으로, 그동안 온건한 지지를 보내던 여론이 차가워지면서 학생 운동 이탈이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오일 쇼크의 영향으로 현실화·보수화되면서 1970년대 중반까지 대부분의 단카이 세대 청년들은 정치 활동과 거리를 두게 되었고, 기업 전사로 전향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편 국철 등 공공 기업이나 현업계 공무원 중 노동조합 활동을 했던 청년들 중에는 파업권 파업 등 과격한 정치 관련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패션이라는 개념이 보급되기 시작한 세대이며, 남성은 청바지, 여성은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고 레저와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등 그 스타일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젊은이 문화의 기반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세대는 그동안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던 서구(주로 미국)와 동양(일본) 문화의 대립을 상대화하고, 뒤섞어 양쪽 모두를 즐기려는 다문화 세대의 선구자가 되었다.
5. 3. 장년기 및 중년기
1960년대 후반부터 결혼과 출산이 증가하면서 핵가족 중심의 가정이 늘어났다. 심각한 주택난으로 인해 도쿄나 오사카 등의 대도시 근교에 핵가족을 위한 단지와 뉴타운이 조성되었다. 남성은 직장, 여성은 가정이라는 성 역할 분업 경향이 강했다. 1980년대 버블 경제 시대에는 사회 중추 역할을 담당했지만, 과로사 등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1]
1991년 버블 붕괴 이후에는 자녀 세대가 취업빙하기를 겪으면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증가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1]
6. 사회적 영향
단카이 세대는 전후 일본 사회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후반, 단카이 세대 대학생들은 일본 정부와 일미 안보 조약,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학생 운동을 주도했다.[24] 전공투 운동으로 대학은 혼란스러웠고, 학생들은 대학 본부를 점거하기도 했다.[24] 그러나 당시 대학 진학률은 15% 미만이었고,[36] 대다수 청년들은 노동에 종사하거나 학생 운동과 거리를 두었다.
젊은 시절 단카이 세대는 다른 세대보다 우익 비율이 낮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들도 노동 운동을 통해 좌파적 활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26] 지방 공무원 노조나 국철 노조 등 좌파계 노동 조합에 참여하거나, 스트권 스트나 나리타 투쟁과 같은 과격한 투쟁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 운동 참가자 대부분은 취업하여 기업인이 되었고, 국철 분할 민영화 등으로 좌파계 노동 조합이 약화되면서[26] 정치 운동과 거리를 두는 사람이 많아졌다. 연합 적군 멤버 등 과격한 활동을 했던 사람들조차 노년에는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였고, 일부는 전향하여 자민당 당원이 되기도 했다.[27][28][29][30][31][32][33][34][35]
문화적으로 단카이 세대는 학생운동, 청바지, 뉴뮤직, 뉴패밀리 등과 같은 키워드와 관련이 깊다. 이들은 콜라, 햄버거와 같은 미국 문화를 적극 수용하고 대중 소비를 주도했으며, 패션, 그룹사운드(GS), 포크 송, 장발 등이 이들의 상징이었다.[1] 무라카미 하루키 등 순문학 작가와 아카가와 지로 등 오락 소설 작가를 배출했다. 카와구치 카이지 등 만화가와 24년조 등 소녀 만화 작가들이 활약하며 1970년대 이후 만화·애니메이션(서브컬처) 발전에 기여했다.[1]
6. 1. 경제적 영향
단카이 세대는 생산과 소비 양면에서 일본 경제 대국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들이 특정 상품을 선호하면 그 상품은 곧바로 거대한 시장을 형성했는데, 자동차, 가전제품, 주택 등이 대표적이다.[36] 토요타, 혼다, 소니, 샤프 등 많은 기업들이 단카이 세대의 성장과 함께 발전했다.[36]단카이 세대가 중추로 활동하던 시기는 세계의 기관차 시대와 대미 공세 시대(30대), 버블 경제 시대(40대 초반), 버블 붕괴와 잃어버린 10년(40대 중반부터 50대 중반)이었다.
단카이 세대의 취업 시기는 중졸의 경우 1962년(昭和37年)부터 1965년(昭和40年), 고졸의 경우 1965년(昭和40年)부터 1968년(昭和43년), 대졸의 경우 1969년(昭和44年)부터 1972년(昭和47년)이다. 단카이 세대 중졸 출신의 이른바 "황금알"이 노동력의 원동력이 된 시기는 고도경제성장기와 겹치며, 가장 많은 인원이었던 고졸 취업자는 고도경제성장기 중후반과 겹친다. 일본의 고도경제성장기는 1957년(昭和32年)부터 1973년(昭和48년)이지만, 이 시기는 단카이 세대 등에 의한 일본의 인구 보너스기(노동력 인구 비율이 증가하는 시기)와 겹친다.
1986년부터 1991년 버블 붕괴까지의 버블 경제 시대에는 단카이 세대가 40세 전후의 한창 일할 나이로 사회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었다.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연공서열과 종신고용 제도가 쇠퇴하면서 이직률이 증가했다.
6. 2. 정치적 영향
단카이 세대는 전후 상위 세대의 정치 사상을 비판하는 교육을 받아, 상위 세대를 부정하는 경향이 강했다.[24] 1960년대 후반에는 일본 정부와 일미 안보 조약, 베트남 전쟁을 비판하는 대학생들의 학생 운동이 활발했다.[24] 당시 전공투 운동으로 대학은 모두 소란스러웠으며, 학생 운동가들이 대학 본부를 점거하고 농성하기도 했다.[24]하지만 당시 대학 진학률은 15% 미만이었고,[36] 청년 대다수는 중졸·고졸로 노동에 종사했다. 대학생이라도 논폴리로서 학생 운동과 거리를 둔 사람도 있었다. 일본 공산당 지지자나 반좌익으로 돌아선 사람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전공투 세대"라는 이미지가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젊은 시절 우익의 비율이 다른 세대보다 적었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들도 노동 운동을 통해 좌파적 활동에 참여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26] 지방 공무원 노조나 국철 노조, 전업 활동가 등 좌파계 노동 조합에 열정을 쏟는 사람들 중에는 변화를 요구하며 신좌익, 과격파와 결탁하여 스트권 스트나 나리타 투쟁 등과 같은 투쟁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학생 운동 참가자 대부분은 취업하여 기업인이 되었고, 국철 분할 민영화 등에 따른 총평 가맹 좌파계 노동 조합의 약체화로[26] 정치 운동과 거리를 두는 사람이 대다수가 되었다. 연합 적군 멤버 등 젊은 시절 과격한 활동을 했던 사람들조차 노년에는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연합 적군 멤버 중 한 명은 전향하여 자민당 당원이 되기도 했다.[27][28][29][30][31][32][33][34][35]
단카이 세대 출신 정치인으로는 하토야마 유키오(전 민주당 대표), 쿠니오(전 중의원 의원), 스즈키 무네오(신당 대지 대표), 니시무라 신고(전 중의원 의원), 마스조에 요이치(전 중의원 의원, 전 도쿄도지사), 가와무라 다카시(전 중의원 의원, 현 나고야시장), 후지노 마키코(전 중의원 의원), 아사노 시로(전 미야기현지사), 모리타 켄사쿠(전 지바현지사) 등이 있다.
6. 3. 문화적 영향
단카이 세대는 학생운동, 청바지, 뉴뮤직, 뉴패밀리 등과 같은 키워드와 관계가 깊으며, 이문화(異文化)와 다른 가치관이 외국으로부터 도입된 시기였다. 이들은 콜라, 햄버거와 같은 미국 문화의 상징들을 적극 수용하였고 대중 소비 세대의 주역이었으며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보냈다. 또한, 이전 일본 남성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패션에 대한 관심과 그룹사운드(GS), 포크 송, 장발이 단카이 세대의 상징이었다.[1]문화적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 미야모토 테루 등의 순문학 작가들을 배출했고, 아카가와 지로, 아라마타 히로시, 호쿠호 켄조, 키쿠치 히데유키 등 오락적인 소설의 거장들을 탄생시켰다. 카와구치 카이지, 무론손, 혼구 히로시, 히로카네 켄시, 코야마 유, 우에다 마사시, 세이 유키, 이시카와 켄 (만화가), 야히코 요시카즈, 오가와라 쿠니오, 소녀 만화계의 24년조나 이케다 리요코, 이치죠 유카리, 야마토 카즈키 등이 활약하며 1970년대 이후의 만화·애니메이션으로 이루어진 신흥 문화(서브컬처)의 번영을 뒷받침한 세대이다.[1]
7. 현재의 문제
단카이 세대의 정년 퇴직(60세)은 2007년 문제로 불거지기 시작했는데, 특히 컴퓨터 업계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다. 단카이 세대 베테랑 기술자들이 2007년부터 대거 정년퇴직을 하면서 시스템 유지관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단카이 세대의 대거 정년퇴직은 기업뿐만 아니라 연금, 개호보험(간병보험)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퇴직 후 생활 방식에 따라 개인 저축이 감소하여 소비 및 금융 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퇴직자 재고용 또는 정년 연장, 젊은 기술자 육성을 위한 기술 연수, 신규 사원 채용, 법률을 통한 정년 연령 상향 조정 또는 기업의 재고용 제도 의무화 등이 제시되었다.
또한, 단카이 세대의 퇴직금과 자유 시간을 겨냥한 여행, 이주, 주택 리모델링 등 새로운 비즈니스가 생겨났으며, 이로 인한 경제 효과는 약 15조엔 정도로 추산된다.
7. 1. 2007년 문제
2007년 문제는 단카이 세대가 60세 정년 퇴직을 시작하면서 발생한 여러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말한다. 컴퓨터 업계에서 처음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시스템 개발 및 보수를 담당해 온 단카이 세대 베테랑 기술자들이 대거 정년퇴직하면서 시스템 유지관리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19]2007년 문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제점 | 내용 |
---|---|
기술 전승 문제 | 단카이 세대의 숙련된 기술이 젊은 세대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문제 |
경영 압박 |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퇴직자에게 지급해야 할 퇴직금(약 50조엔)으로 인한 기업 경영 부담 증가 |
고용자 감소 |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약 105만 명의 고용 감소 발생 |
기타 영향 | 연금, 개호보험(간병보험) 등에 대한 영향, 개인 저축 감소로 인한 소비 및 금융시장 영향 등 |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다음과 같은 방안들이 제시되었다.
- 퇴직자 재고용 또는 정년 연장.
- 기술 연수 요원 양성을 통한 젊은 기술자 육성.
- 신규 사원 채용으로 일손 부족 보충.
- 법률로 정년 연령 상향 조정 또는 기업의 재고용 제도 의무화.
2006년 4월에는 "개정 고령자 고용 안정법"이 시행되어 65세까지의 계속 고용을 촉진하는 조치가 마련되었다.[19] 많은 기업들이 계속 고용 제도를 도입하여 단카이 세대를 재고용함으로써 인건비를 억제하면서 기술을 계승하려 노력했다.[20] 그 결과 2006년 83만 명이던 60~64세 근로자는 2009년 142만 명으로, 65세 이상 근로자는 31만 명에서 54만 명으로 증가했다.[21]
이러한 대책들 덕분에 2007년 문제는 큰 문제 없이 지나갔지만, 단카이 세대가 65세에 도달하는 2012년에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어 '2012년 문제'라고 불리기도 했다.[21]
2012년 3월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단카이 세대 퇴직 등으로 인해 기술 계승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한 사업장은 28.2%였다. 기술 계승 문제에 대한 대책을 실시하는 사업장은 78.0%였으며, 그 내용(복수 응답)은 "퇴직자 중 필요한 사람을 선발하여 고용 연장, 재고용하여 지도자로 활용하고 있다"가 61.2%로 가장 높았고, "중도 채용을 늘리고 있다"(28.9%)가 그 뒤를 이었다.[22]
일부 기업들은 단카이 세대가 축적한 기술, 능력, 인맥을 활용하기 위해 이들을 확보하려 노력하기도 했다. 한편, 단카이 세대 중에는 퇴직 후 전문 지식을 살려 기술 지도자나 시니어 해외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거나, 해외 개발도상국 기업에 재취업하는 경우도 있었다.
단카이 세대의 인구가 많은 만큼, 이들이 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하면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1990년대부터 연금 문제가 사회 문제로 제기되어 왔다. 여러 차례 개혁안이 제시된 결과, 지급액 감소와 납부액 인상이 이루어졌고, 후생연금 지급 개시 시기가 일부 연기되었다.
엔고 현상과 풍부한 시간, 자금력을 바탕으로 오지, 변방, 특수 어트랙션 등을 경험하는 투어가 단카이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 현상도 나타났다.[23]
7. 2. 2012년 문제
단카이 세대가 65세에 도달하면서 2007년 문제와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어 2012년 문제라고 불렸다.[21]2012년 3월,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헤이세이 23년도 능력 개발 기본 조사"에 따르면, 단카이 세대의 퇴직 등으로 인해 기술 계승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한 사업장은 28.2%였다. 기술 계승 문제에 대한 대책을 실시하고 있는 사업장은 78.0%였으며, 그 대책 내용(복수 응답)으로는 "퇴직자 중에서 필요한 사람을 선발하여 고용 연장, 재고용하여 지도자로 활용하고 있다"가 61.2%로 가장 높았고, "중도 채용을 늘리고 있다"(28.9%)가 그 뒤를 이었다.[22] 2017년도 동일 조사에서도 비율은 다르지만, 상위 2개 항목은 유지되고 있다.
단카이 세대가 축적한 기술, 능력, 인맥을 자사에서 활용하기 위해 이들의 인재 확보에 나서는 기업도 있었다. 하지만 퇴직 후에는 전문 지식을 활용하여 기술 지도자나 시니어 해외 자원봉사자로서 개발도상국에서 활약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는 일본 제조업체가 쌓아온 제조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단카이 세대의 퇴직 엔지니어가 중국, 한국, 대만의 기업에 재취업한 사례도 있다.
7. 3. 2015년 문제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태어난 단카이 세대가 2012년 4월 2일부터 65세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2015년 4월 1일에는 800만 명에 달하는 모든 단카이 세대가 연금 전액 수령 연령인 65세 이상이 되면서,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더불어 연금 수령 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인한 연금 재정 압박이 우려되었다.[36]7. 4. 2025년 문제
2022년경부터 단카이 세대가 75세 이상 후기고령자가 되면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2025년 문제라고 부른다.[38][39]단카이 세대가 후기 고령자가 되면 사회적 입원이나 요양이 필요한 사람이 늘어난다. 이 세대의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사회적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제도에서는 연금 지급 수준이 낮아지고 보험료 부담은 높아지고 있다. 단카이 세대의 퇴직금과 후생연금은 거의 보장되지만, 2031년에는 후생연금 적립금이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37] 젊은 세대는 이러한 세대 간 불평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의료비 지출과 현역 세대의 부담, 그리고 의료 체계의 변화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구분 | 내용 |
---|---|
의료비 지출 | 약 43조엔 중 약 40%를 7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 75세 미만 후기 고령자의 1인당 연간 의료비는 평균 222000JPY이지만, 75세 이상은 939000JPY로 약 4배. 요양비 또한 후기 고령자의 경우 크게 증가. |
현역 세대 부담 | 사회를 지탱해 온 단카이 세대가 지원을 받는 측이 되면서, 사회보장급여비는 2018년 약 121조엔에서 2025년에는 약 140조엔에서 141조엔로 증가 예상. 의료, 요양, 연금을 합친 직장인의 보험료율은 2025년에 31%로 증가할 것으로 보이며, 현역 세대의 부담 경감 방안이 중요한 과제. |
의료 체계 변화 | 고령자 급증으로 사회보장비 부담이 커지고, 지방 도시를 중심으로 의사, 간호사 부족 등 의료 체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 |
남성과 여성 모두 75세는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의 기준점이다. 2025년 전후로 단카이 세대 800만 명이 75세 이상이 되면서 요양 서비스 수급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 장기요양보험제도를 이용하고 싶어도 서비스 제공자가 부족하거나, 고령자 요양 시설에 입소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2025년에는 의료비 8조엔, 요양비 5조엔, 연금 3조엔 증가가 예상된다. 연금 수령 연령 인상, 정년 연장, 시니어 고용 촉진 등으로 사회보장비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8. 비판
일부에서는 단카이 세대(특히 남성) 우대로 인해 젊은 세대와 여성들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40] 나카무라 준히코는 저서에서 단카이 세대 우대 때문에 젊은 세대와 여성들이 빈곤 등의 부당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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